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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언론을 통해 '마카오 원정 도박 스캔들'이 한국 프로야구(KBO)를 뒤흔들었다. 이름이 거론된 4명은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 오승환으로 모두 톱 클래스 선수들이었다.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3명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뒤이어 시작된 검찰 조사에서 오승환과 임창용은 혐의가 인정돼 서울 중앙지법으로부터 벌금 최고형인 1000만 원의 약식 기소됐고 KBO는 시즌 50%(7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안지만, 윤성환의 수사 상황은 지지부진했다. 오승환, 임창용에 대한 수사와 별도로 진행되는 상황이고 도박 사건의 핵심 피의자가 외국에 있어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와 중에 오승환은 올 1월 초,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하면서 KBO의 징계를 피해갔고 3월 28일에는 기아 타이거즈가 삼성에서 방출된 임창용의 영입을 공식 발표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가게 됐다. 마지막으로 4월 3일에는 안지만, 윤성환이 1군 훈련에 합류하면서 그라운드 복귀를 눈 앞에 뒀다.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고 6개월 만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직 갈피를 못 잡은 것은 여론의 싸늘한 반응뿐이다. 오승환은 미국 진출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임창용도 출장 정지 징계를 예정대로 받은 뒤 KBO에 복귀할 수 있다. 안지만, 윤성환은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출전을 마냥 미루는 것도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좋지 않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길래 언론과 팬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못 한 것일까.

  첫째로 KBO 징계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이다. KBO는 오승환, 임창용의 징계 수위를 발표하면서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반도핑 제재 공고를 기준점으로 삼았다고 했다. KADA의 공고에서 도핑 첫 위반 시에는 총 경기 수의 50% 출장정지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원정 도박과 금지 약물 복용이 같은 기준이라는 것에 논란의 여지가 있고 작년 6월 도핑테스트를 통해 금지 약물인 스타노조롤을 복용해 벌금 1000만 원과 KBO 30경기 출장정지에 그친 최진행과도 비교되는 부분이다. 비슷한 시기였던 지난해 9월 한국 프로농구연맹(KBL)은 프로 진출 이후 불법 스포츠 도박을 벌인 현역 선수들에게 최대 영구제명의 징계를 내린 바 있다.

  프로야구에서 형평성 없는 징계는 예전부터 논란을 만들었다. 2009년에는 롯데 정수근이 반복된 음주사고로 무기 실격됐다. 2012년에는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LG의 박현준과 김성현이 같은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삼성의 정형식이 음주운전으로 '임의탈퇴'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6월 24일, 오토바이와 접촉 사고를 낸 뒤 경찰의 음주 측정 요구를 거부해 문제를 일으켰던 LG 정찬헌은 잔여 경기인 75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1000만 원, 봉사활동 240시간이란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LG 정성훈 역시 음주운전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벌금 1000만 원과 잔여경기 출장 정지, 봉사활동 120시간 징계가 내려졌는데 시즌 말미였기에 실질적인 출장 정지 경기는 고작 13경기뿐이었다. 이렇게 비슷한 사건임에도 적용되는 잣대는 매번 변해왔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문제는 문제를 일으킨 선수들과 해당 구단들의 사후 뒤처리에 있다. 야구팬들에게 전혀 진정성 있는 사과를 보여주지 않았다.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마냥 기다릴 뿐 구단들도 특별한 대처를 하지 않고 방관했다.

  기아는 임창용이 '연봉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생각에 감동을 받아 영입을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짜 놓은 각본처럼 보였다. 현재 기아의 마무리는 윤석민의 선발 전환으로 사실상 공석이다. 임창용이 징계(144경기 중 72경기 출장 정지) 후 복귀하면 마무리 자리를 맡을 가능성이 크다. 안치홍, 김선빈이 각각 8월과 10월에 군 전역해 1군에 복귀한다면 기아는 상위권의 전력으로 단숨에 탈바꿈된다. 결국 성적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영입이다. 이를 솔직하게 밝혔더라면 어땠을까.

  4월 3일, 삼성이  윤성환, 안지만의 기자회견 자리를 만들었지만 그들이 취재진 앞에 선 것은 단 1분도 되지 않았고 윤성환이 대표로 "팬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다. 야구에만 전념해 팬 여러분께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겠다"는 말을 남기며 모자를 벗고 90도로 고개를 숙인 것이 전부였다. 원정 도박 의혹에 대한 어떠한 해명도 없었고 안지만의 목소리는 들을 수도 없었다. 삼성 역시 당장 두 선수를 엔트리에 등록해 성적을 내는 것에만 급급해 보인다.

  얼마 전, 지바 롯데의 나바로는 일본에서 총기, 실탄 소지가 문제가 되어 긴급 체포되었다. 당시 구단은 곧바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자리에는 당사자인 나바로뿐 아니라 구단 관계자들도 함께 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역시 여러 명의 선수들이 도박 파문으로 수사를 받자 구단 관계자들이 직접 기자회견 자리에서 사과를 했다.

  잠깐 화제를 돌려 보자. 3월 초, KBO는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의 제안에 시끌벅적했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 선수에게도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 상한선을 두자며 제시한 금액이 일본 프로야구 선수 기준인 2천만 달러의 40%에 불과한 800만 달러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국 프로야구 수준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프로야구 선수들을 관리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식은 아직도 일본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제부터라도 프로 선수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구단과 KBO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명확한 규정으로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선수들의 복귀 방식 변화를 위한 노력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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