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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이 떠올랐다. 경기 후반 종료 직전 추가 시간에 손흥민 선수의 극적인 동점골이 나왔다. 그렇게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7년 만에 결승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끝내 55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충분히 잘해주었다.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최상의 결과는 못 만들었지만 축구팬들을 납득 시킨 경기 내용, 그거면 됐다.

 

 

 


  슈틸리케가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2015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호주에 1-2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호주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 한국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투혼을 보여줬지만 연장 전반 종료를 앞둔 실점을 만회하지 못하였다.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그러나 이미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여 주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열린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로 졸전을 펼치며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던 한국 축구 대표팀 아니었던가. 그들을 다시 TV 앞에 불러 들이고 '늪 축구'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열광하게 만든 것은 엄청난 수확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을 이토록 빠르게 변화시킨 중심에는 작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인 9월 5일에 선임된 감독, 울리 슈틸리케가 있다. 2007년 7월 25일 해임된 핌 베어백 감독 이후 허정무-조광래-최강희-홍명보로 이어진 국내 감독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외국인 감독이 한국 축구에 돌아왔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우리는 열광했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 축구 대표팀을 거친 4명의 외국인 감독들(움베르트 코엘류,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백)은 초라하게 퇴장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감독에 대한 막연한 환상도 깨졌다.

  그러나 국내 감독으로 여전히 한계가 보였다. 자연스레 외국인 감독에 대한 열망이 다시 솟구쳤다. 화려한 경력과 높은 명성을 가진 감독들이 축구팬들 사이에서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한정된 예산으로 우수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한국 축구와의 궁합도 생각해야 했다. 이 둘을 절충하는 인물이 필요했고 슈틸리케 감독이 선택됐다.

  그동안 한국 대표팀을 맡은 외국인 감독은 이상하리만큼 네델란드인이 많았다. 히딩크 감독도 그랬고 그 이후 4명의 외국인 감독 중 코엘류를 제외한 3명이 네델란드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두고 감독 후보군이 너무 좁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독일 국적의 슈틸리케 감독이 선임되며 새로운 기대감을 만들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독일 축구의 DNA가 한국 축구에 심어지길 모두가 바랬다.

 

 

 


  1954년생인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시절의 경력이 화려하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에서 5시즌, 레알마드리드에서 8시즌을 뛰면서 팀을 여러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 거의 10년 동안 국가대표로도 뛰며 1980년 유럽선수권 대회 우승,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준우승 경험도 있다. 반면, 감독으로서는 크게 주목할만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스위스, 독일, 코트디브아르 대표팀을 비롯 중동프로팀 등을 맡으면서 팀에 우승을 안긴 적이 없다. 그렇지만 굉장히 열정적이고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높게 평가 받았다.

  4년 계약을 한 슈틸리케가 맞은 첫번째 대회이자 시험대는 2015 호주 아시안컵이 되었다. 불과 4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 무리로 보였다. 게다가 이동국, 김신욱 등의 주축 공격수들이 부상으로 아시안컵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고 박주영, 지동원, 윤석영 등도 소속팀에서의 부진으로 제외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안정된 수비력과 게임을 더해가며 나아지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무실점 전승으로 결승까지 올랐다. 슈틸리케 감독은 확실히 브라질 월드컵 이후 어수선한 한국 대표팀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는 선수들의 노력 덕분은 물론이고 감독의 리더십이 빛을 더한 결과라 볼 수 있다.

"넌 항상 하던 대로 해라. 편하게 부담 없이 해라. 잘 하든 못 하든 책임은 내가 진다."

  4강전이 열리기 3일 전, 슈틸리케 감독이 이정협을 불러 했던 말이라고 한다. 8강전 우즈베키스탄전에 선발 출장한 이정협은 자신의 경기력이 좋지 못했다고 생각해 자책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슈틸리케 감독이 건넨 이 한마디는 국가대표 경험이 전무했던 공격수인 이정협이 가졌던 부담감을 덜어 주었다. 그리고 그것에 보답하듯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그리 오래 생활하진 않았으나 '이 감독이 내 편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언론의 목소리나 여론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보는 것만이 판단의 기준인 것 같다. 모든 결정이 팀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다."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호주 아시안컵 엔트리에서 제외된 이동국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슈틸리케 감독은 명성 등에 흔들리지 않고 실력만 있다면 '언제든 뛸 수 있다'는 강한 동기 부여를 만들어 주었다. 공격수 기근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소속팀에서 부진을 겪고 있는 박주영을 미련없이 제외하고 소속팀 상무에서 벤치 멤버였던 이정협을 발굴해 발탁했다. K리그 클래식(1군 경기)은 물론 챌린지(2부리그), U리그(대학)까지 살피는 노력의 결과였다. 그리고 이청용과 구자철이 부상으로 아시안컵 대회 중 소속팀으로 복귀하는 위기 속에서도 '이근호, 한교원, 남태희가 뛰면 된다'며 백업으로 간주되던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김승규의 등장으로 당분간 변화는 없을 것으로 비춰졌던 골키퍼 자리도 김진현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비록 아시안컵 우승은 좌절되었지만 값진 수확을 얻었다. 앞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남은 기간은 3년 6개월, 지난 4개월 동안의 변화를 돌아보면 너무도 기대가 된다.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은 귀국 후 '엿 세례'를 받았다. 이번 아시안컵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따뜻한 환호와 격려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꼭 그래야만 한다. 그들은 한국 축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잘 이끌어줄 슈틸리케 감독을 향한 응원도 필요하다. 아시안컵의 성과로 인해 국민적 기대감이 높아졌겠지만 잠깐의 부진에 너무 큰 비난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절뚝거리던 한국 축구를 걷게 만들어 주었다. 뛸 수 있도록 만드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 본문에 삽입된 모든 사진은 sportalkorea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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