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대학교 3학년 때였을 겁니다. 어머니는 유명한 점집이 있다며 나를 안양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평소 역학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어머니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간혹 찾으셨던 곳인 듯 합니다. 어머니는 취업을 앞둔 나의 앞날을 궁금해 하셨습니다. 저는 운세 따위는 안 믿는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더라도 일단 가보자'는 어머니의 회유책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잘 따른 탓인지 4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그 역술인이 한 말 중에 크게 기억에 남는 말이 없습니다. 저는 진짜 그 역술인의 말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추석 연휴, 요즘 가장 뜨겁다는 영화 <관상>을 보고 왔습니다. 개봉 초부터 관객수가 이틀에 100만명 씩 추가될 정도라니 정말 대단한 흥행 속도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영화의 소재가 큰 몫을 했을 겁니다. 관상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는데 이는 운명에 관심이 많은 요즘 사람들을 솔깃하게 만들었을 테지요. 또한, 호화로운 캐스팅도 기대를 한껏 높여 놓았을 겁니다.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김혜수라는 배테랑 배우들과 각각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영화 '건축학 개론'을 통해 대세로 떠오른 이종석, 조정석이 함께 한다는 것은 관객들에게 그만큼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것일테니 말이죠.

 처남 팽헌(조정석), 아들 진형(이종석)과 산속에 칩거하고 있던 내경(송강호)은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천재 관상가입니다. 그는 기생 연홍(김혜수)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향하고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던 무렵, 내경은 김종서(백윤식)로부터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수양대군(이정재)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합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러나 역사에서 알 수 있듯 내경의 노력과는 달리 수양대군의 역모는 성공을 거두고 말죠.

 영화 속 관상가 내경의 예언은 하나도 빗나간 것이 없습니다. 관직에 오르면 화를 입을 상이라던 진형의 운명도, 역모를 일으킬 상이라던 수양대군의 운명도, 목이 잘릴 상이라던 한명회의 운명까지도 말이죠.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요? 인생이란 것은 이미 정해진 것이기에 어떠한 노력도 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너무 발버둥 치며 살아온 탓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은 숙명이란 것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 말이죠. 열심히 한다고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노력해서 안되면 '노력이 부족한가 보다'고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꼭 그렇지 않은 것인데 말입니다. 애초부터 못 오를 나무라는 것도 있습니다. 깔린 패를 보지 않고 무작정 덤비는 것은 오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영화 <관상>의 기본 줄거리는 역사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별로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관객이라면 전체적인 흐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죠. 역사적 사실을 바꾸지 않는 한 결과는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139분이나 되는 영화를 루즈(loose)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대신 연기파 배우들의 모습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관상>의 큰 매력입니다. 비록 송강호 1명에 편중된 면이 있지만 6명의 주연급 배우들이 출연하는 점을 감안하면 산만하지 않고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졌다고 생각됩니다.

 문득 대학교 3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찾아갔던 그 점집의 역술인이 건네준 종이가 떠올랐습니다. 그 역술인이 말한 사주가 맞았는지가 너무나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비록 서랍 속을 모두 뒤져도 끝내 그 종이는 발견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그때 그 운명대로 내가 살아왔건 아니건, 운명을 바꿔 살아가고 있건 아니건 지금의 나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혹시 순리를 바꾸려다 영화 속 진형과 같은 최후를 맞이할 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