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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정말 쓰고 싶었다. 초등학생 눈에는 안경 쓴 사람들이 한없이 멋져 보였다. 패션의 완성이 마치 안경인 것 같은 착각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도 한 켠에 있었던 듯 하다. 당시에는 안경 낀 친구들이 별로 많지 않아서 내가 안경을 쓰고 나타나면 벼락 스타가 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마침내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입 속에 오랫동안 머금었던 말을 꺼냈다.

“엄마, 나도 안경 사 줘”
“안경을 사달라고? 안경은 눈이 나빠야 쓰는 거야”

엄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눈이 나빠지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초등학생에게도 매우 쉬운 대답이었다. 늘 엄마가 나에게 하는 잔소리에 반대 행동이 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책이나 텔레비전을 가까이서 보기도 하고 눈을 깜빡이지 않고 오랫동안 버텨보기도 했다. 이런 나의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고 중학생 때 나도 안경잡이가 되었다.

처음엔 안경을 쓰는 일이 매우 낯설었다. 안경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는 일도 잦았다. 심지어 안경을 착용한 상태였는데도 안경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던 때도 있었다. 안경을 낀 상태에서 눈을 비비려다 안경알을 만진 적도 많았다. 뜨거운 것을 먹을 때면 안경알에 서린 김 때문에 불편했다. 수영이나 스키, 축구 등의 스포츠를 즐길 때면 안경은 너무 신경 쓰인다. 이 어색함과 불편함에도 ‘적응하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참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안경을 낀다는 것의 좋은 점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시대도 변해 있었다. 최첨단 IT 기기의 여파로 주변에는 눈이 나빠 안경을 끼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설상가상으로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이제는 안경이 불편해 라식 등의 시력 교정술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랬을까’란 생각뿐이다. 나는 안경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던 것일까? 분명 똑똑해 보이는 이미지를 얻게 됐지만 똑똑해 진 건 아니었다. 이미지 변신을 위한 것이었다면 패션 아이템으로 안경알 없는 안경을 껴도 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른이 되고 보니 깨닫는 것들이 참 많다.

나는 지난주, 안경점에 들렀다. 휴대전화를 바꾸듯 2년에 한번 즈음 들르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또 다시 나의 새로운 눈을 렌트했다. 지난 번에는 각진 놈이었는데 이번엔 훨씬 둥그스름하다. 2년 뒤면 또 다른 눈을 갖게 될 것이다. 이미 나는 이별에 익숙해졌다.

안경을 이제는 벗고 싶다. 여전히 안경을 쓴 사람들이 무한히 멋져 보인다. 그러나 똑 같은 안경을 쓴 나는 과연 멋질까? 한 번을 더 생각하고 나니 답이 조금 달라지는 듯 하다. 하지만, 너도 나도 안경을 쓰기 시작한 시대에는 몰랐다. 너도 나도 안경을 벗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어릴 적, 잘못된 호기심이 일을 그르친 경우입니다. 여러분도 저같은 경험 없으신가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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