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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새학기를 맞는다는 것은 두근거림의 순간이었다.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아쉬움으로 '제발 이 친구 만큼은 같은 반이 되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무서운 담임 선생님이 걸리는 해에는 1년이 고달프다. 새 교과서와 함께 새롭게 배우는 과목들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생긴다. 

 그녀를 만나기 30분 전이다. 일찌감치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긴장감 탓도 있지만 처음 와보는 곳이었기에 주위 동선을 파악해야 하는 탓도 컸다. 20분쯤 살펴보니 대충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맛 좋고 분위기 좋은 스파게티 집 하나도 알아두었다. 다행히 약속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약속 시간 5분 전, 그녀로부터 문자가 왔다. 차가 막혀서 늦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지' 라는 생각으로 기다린게 벌써 20분이 지났다. 그리고 그제야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였다. 다 왔다는 그녀의 이야기. 아, 저기 손을 흔들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처음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와 모습을 본 것이. '김태희' 급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느낌이었다. 서로가 어색하여 대화가 중간 중간 끊기기도 했다. 재빨리 식당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내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
 "저는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매번 듣는 대답이지만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는 대답이기도 하다. 결국 나는 미리 준비해 둔 맛 좋고 분위기 좋은 스파게티 집으로 그녀를 인도했다. 그녀도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각자 음식을 시키고 메뉴가 나올 때까지 잠깐의 정적. 역시 내가 말을 시작했다.
 "어제까진 괜찮았는데 오늘은 날씨가 좀 쌀쌀하네요"
 "네~ 좀 춥네요ㅎㅎ"
 자꾸 대화가 중간 중간 끊기는 느낌이다. 내가 지금 취조 하는 건 아니겠지...?
 "실례가 안된다면 하시는 일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네... 디자인 회사에서 마케팅 쪽 일을 하고 있어요."
 "와~ 저는 공대 쪽이라서 좀 생소한 분야거든요. 재밌어 보이는 일인데요?"
 "뭐, 지루하지는 않아서 좋은 것 같아요. 사무실에만 앉아 있는 건 별론데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거든요."
 "오~ 좋겠네요~ 저랑은 완전히 다른데요~? 야근은 많이 안 하세요?"
 드디어 대화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느낌이 든다.
 "정말로요? 저도 야구 좋아하는데 어디 팬이세요?"
 "롯데요~ 저희 부모님이 부산 출신이시거든요."
 "이야~ 저는 두산팬이에요~ 그럼 롯데 구장도 많이 가보셨겠네요?"
 "어릴 때 밖에 안 있어서 1번 가본 게 전부에요~"
 취미가 비슷하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여전히 대화가 중간 중간 끊기기는 했지만 분위기는 훨씬 화기애애해졌다. 이런 분위기는 식사를 마치고 방문한 커피 전문점에서 까지도 이어졌다. 
 아쉽지만 벌써 저녁 9시. 첫 만남부터 숙녀를 늦게 집에 보낸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며 이만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그날이 그녀와의 첫 번째 만남이자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SNS를 통해 그녀에게 말을 걸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하루, 이틀, 1주일 ... 아무리 반성을 해보아도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분위기는 좋았는데 ... 한번 더 만나볼 수는 없는 건가? 대체 사람을 한 번만 보고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해 봤자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었다.

 그녀를 만나기 30분 전에 내가 한 노력은 대체 뭘까? 결국 허튼 짓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더욱 문제는 이런 일이 내겐 너무 흔하게 찾아왔다. '내가 그리 남자로서의 매력이 없나'라는 자책도 든다. 

 뭐~ 학창시절에도 두근거림은 나를 배신했었다. 기대를 품고 입학한 초등학교는 '하지 말아야 할 제약'들이 참 많은 곳이었다. 원치 않던 선생님이 담임을 맡아 1년 내내 고생한 기억도 있다. 1년 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와는 꼭 다음 해에 다른 반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나는 가슴 속 두근거림에 속으면 안될 것 같다. 인생은 그렇게 사람 마음처럼 쉽게 쓰여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오늘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빼빼로 데이'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오늘을 마음껏 즐기고 계십니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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