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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면 6년 만이다. 6년이란 세월이 무색할 만큼 대부분이 그대로 였다. 살았던 아파트도 다녔던 초등학교도 교회도 약국도 서점도 문구점도 슈퍼도 분식점도 은행도 부동산 중개소까지도 그대로 였다. 그나마 바뀐 거라곤 아파트 외벽이 새롭게 도색되었다는 것, 학교 운동장이 흙에서 잔디로 바꼈다는 것과 내 나이 뿐이었다. 내 기억 속 장면과 꼭 닮아 있어 6년 만의 산책에도 전혀 낯설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놀이터 앞에 멈췄다. 갑자기 기억이 났다. 그 날은 학원을 가기 위해 놀이터 앞에서 셔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잔뜩 불량한 자세로 두 명의 남자들이 나를 불렀다. 누가 봐도 동네 불량배였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갔다. 그리고 적당한 건물 2층에 숨었다. 다행히 그들은 그 곳까지 쫓아오지는 않았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로서는 대단히 큰 사건으로 기억에 남는다. 약간의 과장을 섞으면 나는 그 날 범죄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학교 정문과 훨씬 더 가까웠다. 그러나 나는 종종 후문으로 하교하기도 하였다. 그 곳에는 뽑기 엿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뽑기의 최고 격인 대형 잉어엿이 걸리면 기분이 정말 좋아졌다. 약간의 과장을 섞으면 표정 만으로는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 마냥 보일 수도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거의 15년 동안을 살았다. 처음 발을 디딘건 1992년 10월,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서울 제기동에서 경기도 분당이란 곳으로 이사를 왔다. 익숙한 곳을 떠난다는 슬픔보다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는 기쁨이 더 컸다. 나에겐 내 방이 생긴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분당에 이사 간 첫 날, 내가 내뱉었던 말도 "우리, 여기서 평생 살아요!" 였다.결국 그 날의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5년 2월 즈음, 우리 가족은 다시 서울로 향했다. 나는 금세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고층 아파트가 줄 지어져 다소 삭막해 보이는 분당 보다 낮은 빌라들이 대부분이고 차소리로 시끄럽지만 사람 사는 동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서울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요즘도 가끔 분당에 살던 시절을 떠올린다. 분당의 집에는 화장실에 욕조가 있었다. 분당의 사람들은 삶에 더 여유가 있어 보였다. 분당에는 나의 아지트가 있고 학창 시절 친구들이 있다. 이외에도 나는 여전히 분당에 살았던 추억이 더 많다. 논과 밭 뿐인 주변의 모습들이 하나 둘 건물로 채워지는 15년의 변모를 나는 모두 보아 왔다.

 8년 만이다. 지난 여름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서 큰 성공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네델란드 리그의 PSV 아인트 호벤으로 8년 만에 돌아왔다. 돌아온 박지성은 '슈퍼스타'였다. 8년 전과 다르게 그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이끌 리더의 역할을 부여 받았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박지성의 생각은 달랐다. 거의 바뀐게 없다고 했다. 경기장이나 훈련장, 구단 직원들도 같다고 했다. 그나마 바뀐 거라곤 같이 뛰는 선수들이 많이 어려졌다는 것과 내 나이 뿐이라고 했다. 박지성도 나도 아이도 학생도 아줌마도 아저씨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다른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의 기억 속 특별한 장소를 다시 만난다면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끼나 보다. 8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한 박지성과 달리 나는 여전히 서울에 산다. 할 일을 마치고 분당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 전, 마음 속 인사를 건넨다. 참, 많이 보고 싶었어.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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