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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라면 학원, 대학생이라면 강의실, 직장인이라면 회의실 안에서 선호하는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주 앉게 되는 자리가 있기 마련이다. 이는 사소한 습관일 수도 있지만 무심코 지나칠 일 만은 아닌 것 같다. 학교 교실을 예로 들면 앞자리는 키가 작거나 눈이 나쁘거나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의 차지 일 것 같다. 창가에 앉은 학생은 왠지 멍 때리거나 사색을 즐길 것 같다. 놀기 좋아하고 일명 일진이라 불리는 이들은 뒷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이 같은 우리들의 편견 때문에 [자리]가 매우 중요하다. [자리] 하나로 인해 우리는 그(그녀)를 모범생 또는 문제아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나는 3년 차 직장인이다. 남들이 들으면 이름을 다 알법한 대기업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쁨에 겨워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계시는 부모님의 호응에 발을 맞추면서도 얼굴 절반에는 어두운 그림자를 그릴 수 밖에 없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처음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로봇과 같이 시키는 일만 하기에도 벅찼다. 2년 동안은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지도 선배의 품을 떠나 오롯이 단독으로 업무가 주어지자 다른 걱정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직장인으로서의 의무감 같은 것들에 대한.

 학교와 회사의 차이점 중 제일은 돈을 내고 다니느냐, 돈을 받고 다니느냐 에 있다. 돈을 받는 대신 성과를 내야 한다. 그리고 성과는 곧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인사고과가 좋지 못하다면 연봉에 영향이 있을 뿐 아니라 해고 통지의 좋은 근거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따라서 (철밥통이 아닌)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매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요즘 나에게 찾아온 것 처럼.

 그런데 이 성과라는 것이 얼마나 공정하게 평가될 수 있을까? 특허 몇 건, 보고서 몇 건 등의 객관적 자료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같은 부서에 유독 이쁨을 받는 선배가 있었다. 같은 일을 해도 다른 선배들과는 뭔가 더 다른 대우를 받는 것 같았다. (나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당연히 승진도 입사 동기들보다 빨랐다. 물론 그 선배가 실력이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분명 객관적 지표 외에 다른 것이 영향을 미침을 눈치챌 수는 있었다. 결국 좋은 성과를 받으려면 상사의 마음까지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한 번 상사의 눈에 들기는 어려워도 일단 좋은 평가를 받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영화 <설국 열차>를 보고 왔다. 영화는 열차의 맨 앞쪽 엔진칸을 향해 질주하는 꼬리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엔진칸 사람들은 꼬리칸 사람들에게 "애초부터 자리는 정해져 있어(메이슨 총리)",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위치가 있어(윌포드)"라는 말로 자신들의 위치가 더 높음을 과시한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음은 기차 안의 평등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보이지 않는 계급 사회에 살고 있는 탓이여서가 아닐까? 그래서 처음 앉게 되는 [자리]가 더욱 중요해 보이는 것이고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은 이러저러하여 결정된 [자리]로 인해 영원히 꼬리칸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엔진칸에 오를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우려이다.

 

 


 

 지금,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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