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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 대 여름에는 TV에서 방송되는 납량 특집 드라마를 참 즐겨 보았습니다. 스릴 넘치고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점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언제부턴가 납량 특집 드라마는 자취를 감추었고 저 또한 예전처럼 무서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빨간 휴지, 파란 휴지의 학교 괴담이나 놀이공원의 롤러 코스터도 마찬가지였지요. 훌쩍 커버린 탓일까요?

 정말 오래간만에 영화관에서 공포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라서 보긴 봐야 되겠는데 마땅히 끌리는 것이 없어 선택한 것이 '컨저링'이었습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가족들이 겪는 일이라는 약간의 고전적인 컨셉과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흥미로워 보였지만 의문 부호가 더 많아 보인 게 사실입니다. 무더위가 다 지나간 9월에 국내에서 개봉하는 점,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라는 앞 뒤가 안 맞는 다분히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함으로만 보이는 포스터의 홍보 문구는 저의 기대치를 떨어뜨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우려는 기우였던 것 같습니다. 오래간 만에 공포 영화 다운 공포 영화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컨저링'의 매력은 최근의 공포 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음에 있습니다. 흔히 공포 영화하면 귀신이 갑자기 튀어 나온 다든지 피나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게 마련입니다. 때문에 어떨 때는 무서움 보다 잔혹함에 떨어야 하기도 합니다. 관객에게 공포감을 강요하는 느낌인 것이죠. '컨저링'은 이런 것들을 다 제쳐두었습니다. 포스터의 홍보 문구가 그제서야 이해가 갔지요. 관객은 무섭지가 않은데 영화 속 주인공들만 무서워 하는 그런 허접한 공포 영화는 적어도 아닙니다. 영화의 초 중반은 다소 잔잔하게 공포감을 조성합니다. 무언가가 있을 것 같지만 그 실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아 관객들을 시종일관 몰입할 수 있게 만듭니다. 영화의 종반부에도 귀신 대신에 악령이 '누군가'에게 씌인다는 설정을 통해 공포를 극대화 시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공포의 강약 조절이 매우 돋보입니다. 간담을 서늘케 하거나 깜짝 깜짝 놀라게 되는 장면도 적절히 등장합니다.

 다만, 영화의 마지막 디테일은 다소 아쉽습니다. 사람에게 씌인 악령을 퇴치하는 과정이 너무 쉽게 마무리 되고 맙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영화 필름이나 제작비가 부족한 건 아닌 지란 생각까지 들었답니다. 러닝타임(상영 시간)을 조금 길게 가져갔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영화에는 악령이 깃든 물건들이 여럿 나오는데 1-2가지를 제외하고는 그냥 배경일 뿐 그 이상의 역할이 없습니다. 막이 내린 영화, 그 이후를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의 여운도 부족합니다. 장점이 단점을 훨씬 능가하는 영화라는 점이 다행일 뿐입니다.

 '컨저링'은 최근 160만 관객을 돌파하며 무려 14년 만에 '식스 센스'가 갖고 있는 역대 국내에서 개봉한 외화 공포 영화 1위 기록을 갈아 치웠다고 합니다. 최근 800만 관객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는 한국 영화 '관상'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 놀라운 기록입니다. 아이돌 1-2명을 앞세운 국내 공포 영화나 잔인함이 가득한 공포 영화에 식상함을 느꼈던 저에게도 꽤나 만족스러운 공포 영화였습니다. 공포 영화 매니아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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