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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면 8년 만이다. 8년 전, 우리 가족은 나의 입대를 하루 앞두고 공군 교육 사령부가 위치한 진주로 향했다. '입대 전의 마지막 여행'이란 의미가 담겨있었지만 여행의 기분은 전혀 나지 않았다. 진주성 촉석루의 '논개 이야기'에 전혀 관심 따위가 없었다. 보신의 화신이란 장어구이를 먹었음에도 신나지 않았다. 군인이 되는데 이런 게 무슨 소용일까.

 8년 만의 가족 여행은 사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성사되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임직원 할인 숙박 업소에 내가 추첨 된 것이다. 극성수기로 예상되는 광복절이 포함된 이틀로 응모(?)한 터라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 다더니……' 물론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희소식'을 부모님께 전했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가족 여행은 이전과는 달리 나의 역할이 막중해 보였다. 우선은 금전 부담이 대폭 늘어났다. 숙소비는 물론이고 (기름값과 고속도로 통행료를 제외한)식비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또한,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았다. 급기야 시간대 별로 나누어진 '여행 계획표'까지 제작했다. 잠시 나마 여행사 직원이 된 느낌이었다. 그때 서야 사람들이 왜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면 고생이라는 말'을 꺼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여행에 대한 모든 준비를 도맡으셨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보게 되는지도 모른 채 쫓아다니기만 하였다. 수동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먹을 것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또한 뭐든지 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짜증을 토해냈다. 어쩌면 대학생이 되고 자율성이 보장된 친구들과의 여행은 수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기에 더 즐겁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가족 여행은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기대와는 다르게 만족스러웠다. 내가 가고 싶은 곳 위주로 코스를 정하고 다음 일정이 어디일 것이라는 걸 스스로 알아버린 여행의 재미는 남달랐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아버렸다. 인생의 한 자락처럼 여행도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야만 즐거워질 수 있다. 부모님과의 여행이 힘들고 지루할 것만 같다는 나의 편견이 처참히 깨져버린 순간이 참으로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여행에서도 재미를 못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나의 방법을 시도해보길 바란다. 지금껏 그토록 수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왜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일까. 나의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당신의 여행은 어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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